‘뉴떡밥’과 ‘취케팅’ 덕에 기력을 되찾았다
‘의욕’이라는 게 점점 없어지고 있다. 딱히 사고 싶은 물건도 없고, 가보고 싶은 맛집도 없다. 여행 참 좋아했지만 코시국에 막힌 해외 여행길에 휴가에 대한 기대도 접었다. 얼마전에는 손톱 깎을 의지도 사라져 수주일을 방치하다가 겨우내 잘라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회사일은 밀려 있어서 울면서 기사를 쓴 적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있다. 7개월 전부터 시작해온 가수 A의 덕질이다. 사실 덕질은 나의 ‘가성비 취미’였다. 누워서 손가락 몇번 움직이는 것만으로 헛헛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으니까.
A의 단독콘서트를 연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수백번의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안내를 본 끝에 취케팅(취소 표 구매)에 성공했다! 2열이다. 허리와 머리를 흔들어 재끼며 춤을 췄다.
“무한한 시공간 속에서 내가 지금 A를 만나 A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다니!” 공연자의 눈동자 움직임까지 다 보이는 영광의 2열에 앉았을 때는 머릿속으로 온갖 주접을 떨었다. A와 내가 이렇게 마주 보고 있는 건 기적이라는 생각에 공연을 보면서 펑펑 눈물을 흘린 건 안 비밀이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을 느꼈다. A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머릿속으로 주문을 걸었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흐르고 공연은 끝났다. 하루만 가려고 했건만 첫날의 감동에 다음날 콘서트도 예매해버렸다. 그렇게 그를 보기 위해 이틀 만에 29만1000원을 써버렸다.
이 미친듯한 덕질이 왜 시작됐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나서다. 그 방송에서 그동안 겪은 삶의 곤경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A가 계속 신경 쓰였다. 다른 직종이지만 놀랍게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가수 일이 힘들어 식사 도중 지인 앞에서 울음을 터트린 적이 있다는 그의 일화는 실은 나도 똑같이 겪은 일이었다. 갓 데뷔했을 때는 발랄해 보이더니 최근에는 한껏 주눅 든 그의 모습도 내 모습을 보는듯했다.
하루만 가려고 했건만 첫날의 감동에 다음날 콘서트도 예매해버렸다. 그렇게 그를 보기 위해 이틀 만에 29만1000원을 써버렸다.
나도 한때는 복도에서 친구들을 마주칠 때마다 장난치는 ‘한 까불’ 했지. 내가 세상 잘난 줄 알았던 때가 있었지.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는데.
지금은 세상이 내 맘 같지 않고, 기대감을 품어봤자 대부분 실망으로 돌아온다는 걸 안다. 나는 잘난 것 하나 없다는 생각에 ‘쭈구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의욕의 불씨를 하나둘 꺼트렸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어떤 뮤지션의 길을 걸을지 뚜렷한 주관이 있는 A가 부럽기도 하다. 내 또래지만 나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성취한 모습에 질투도 난다. 좋은 일이다. 부러움과 질투 모두 욕심이 남아 있어서 드는 감정이니까.
오늘도 퇴근 후 덕질은 계속된다. 자기 전 A가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본다. 어느 순간 광대 옆 근육이 아프고 잇몸이 말라 있다. 30초 이상 미소짓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이다. 새로 장만한 블루투스 스피커로 A의 노래를 듣는다. 역시 스피커 사길 잘했다. 내일은 ‘171024 OOO 스테이지 직캠’ 영상을 봐야지.
A가 누군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름을 밝힐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란다. 덕질을 하며 마음 한켠에 불안감을 품고 산다. A가 물의를 일으켰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신문 문화면에서 봐야 할 사람이 사회면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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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 메뚜기